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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차이나타운', 줄거리와 캐릭터 및 발상의 전환

by 잼나나 2024. 6. 17.

1. 영화관련 기본 정보 및 줄거리

감독은 한준희, 영화 사이코메트리의 각본을 쓰고, 뺑반의 감독, 각본을 맡았었다. 차이나타운 역시 감독 및 각본을 맡았다. 주연배우는 엄마 역의 김혜수, 일영 역의 김고은, 석현 역의 박보검, 우곤 역의 엄태구로 지금 보면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지하철 10번 물품보관함에 버려진 아이 일영은 본인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차이나타운에서 '엄마'를 만난다. 돈 벌이에 도움이 되는 아이들을 식구로 거두는 엄마에게 본인의 쓸모를 증명하며 인정받는 일영. 그렇게 삶의 의미 없이 살아가던 일영이 악성채무 회수를 위해 방문한 곳에서 채무자의 아들 석현을 만나게 된다. 비록 돈은 없지만 꿈을 꾸고, 물질로 주는 것은 없어도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줄 줄 아는 그를 통해 일영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일영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음 느낀 엄마는 그녀에게 (충분히 예측가능한) 잔인한 업무를 준다. 일영은 살아온 세상과 새로운 세상의 충돌지점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 명배우들의 캐릭터

김혜수는 기미가 거뭇거뭇 올라온, 뒷골목 사채 큰 손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다. 피도 눈물도 쏙 빠져나간 것 같은 건조한 연기로 두려움을 자아내는 연기를 펼쳐낸다. 그에 반해 김고은의 연기는 그닥 부각 되지 않았다. 그냥 적당한 정도. 말갛던 얼굴에 숏컷을 하니 보이시한 느낌이 나긴하지만 여전히 이런 역할을 하기엔 너무 낭창하고 여리한 느낌이었다. 외모의 여리함을 극복할 만한 카리스마가 연기로 녹아나지도 않아서 아쉬움이 있다. 어찌보면 캐릭터의 한계였을 수도 있겠다. 

목소리로 부각되는 배우인 엄태구는 이 때 역시 굵직한 목소리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지만 그 목소리를 넘어선 무언가를 주기엔 부족했다. 박보검 역시 캐릭터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만, 해맑고 순진무구하고 착한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본인의 외적 요건을 십분 활용하긴 하였으나, 연기 측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없었다. 사실 가장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던 것은 홍구 역의 조현철 배우인데 화면에 잡힐 때마다 주연보다도 시선을 끌어당겼고 막판의 긴장감을 주는데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3. 부족한 개연성

영화를 보고난 직후 드는 생각은 '석현'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인상깊은 것이 아니고 무언가 거슬린다. 가만히 되짚어보면 석현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허술하다.  본인의 잘못이 아닌 가족의 잘못으로 나락에 떨어졌지만 꿈을 잃지 않은 석현.

어찌보면 바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순수하여, 자신의 집에 쳐들어온 빚쟁이 밥을 챙겨줄 지경이다. 비록 거친 세상 앞에 무력할지라도 무기력하진 않은 그는 본인과는 한없이 다른 어두운 세계에서 살아온 주인공에 대한 어떠한 경계도, 배척도 없이 그 주인공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품어 감싸는, 대책없는 용기와 본성에 배인 선함.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족때문에 빚독촉을 받아온 사람의 행동이라기엔 거의 백치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리고 울망하고 선한 눈망울에 보호해주어야할 것 같은 외모까지, 마치 육식동물이 뭔지도 모르고 그 주위를 맴도는 초식동물과 비슷하다. 이 무력한 존재가 보여주는 따뜻한 말과 손길에 녹아내린 차가운 주인공은, 자신이 이제껏 살아온 거칠었던 생을 벗어나 안식을 찾고자하는 위험하고도 안일한 욕구를 갖게 되고 이로 인해 결국 둘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된다.

4. 발상의 전환

글로 묘사해보니 석현의 존재는 그닥 석연치 않을 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낯익다. 이 존재가 여성이라면 사실 별로 새롭지 않다. 느와르물의 장르적 특성 상 이렇게 어두운 세계에 있는 남자의 순정을 가져가는 것은 이렇듯 한떨기 난초같이 약하고 고아하며, 세상의 때 하나 타지 않은 존재였거나 혹은 풍파 속에도 꺾이지 않은 절개를 가진 존재였다. 새롭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클리셰인 수준이다. 이제껏 느와르 물을 보면서 한번도 따져보지 않은 개연성이다. 남자가 주인공이고, 여자가 대상일 때는 이 설정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는데 단지 성별만 바꾸었더니 이게 너무 개연성이 없어서 몰입을 방해했다.  왜 일까. 왜 이제껏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혹은 왜 이제와 이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여성이 주인공인 장르물이긴 하나, '엄마'도 '일영'도 배우가 여자라는 사실 외에는 여성으로서의 특징이 없다.  남자 주인공으로 써두었다가, 여자를 주인공으로 바꿔볼까? 하고 설정 변경하나 없이 이름과 성별만 바꾸었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수준이다.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냥 주인공의 성별을 여자로 바꿔서 '여성 느와르'로 분류되는 영화를 한번 찍어보고 싶었던 걸까? 혹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간의 수많은 느와르물에서 허용되어온 허술한 전개를 드러내보고 싶었던 걸까? 감독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바, 앞으로 감독의 행보를 통해 역량을 파악해보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