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기본 정보 및 줄거리
미셸 공드리 감독의 2015년 작품으로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일라이저 우드라는 쟁쟁한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역시나 사전정보 없이 보는 게 좋은 영화. 사실 정보 있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영화가 주는 감동은 여전할 테니.
영화 오프닝, 조엘은 계획 없이 몬타크로 가는 기차에서 클레멘타인이라는 여자를 만나 서로 운명 같은 이끌림을 느껴 사랑에 빠진다. 오프링 후 오랜 연인사이인 조엘은 클레멘타인에게 사과하려 그녀가 일하는 서점에 가지만 클레멘타인이 그를 모르는 사람인 듯 대하고, 다른 남자와 연인처럼 굴어 조엘에게 상처를 준다. 조엘이 친구 부부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클레멘타인이 라쿠나라는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에 가서 조엘과의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에 화가 난 조엘도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머리에 헬멧처럼 생긴 기계를 씌우고 최근 기억부터 시간 역순으로 기억이 재생되며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기억을 지워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조엘은 그녀와 있었던 일들과 감정, 추억들을 다시 한번 고스란히 겪게 된다.
조엘은 기억 지우는 걸 멈추기로 결정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고, 기억 속의 클레멘타인과 자신의 다른 기억 속으로 도망가지만 결국 소용이 없다. 기억 속 클레멘타인과 몬타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 조엘은 모든 기억이 지워진 채 밸런타인데이 아침에 눈을 뜨고, 이 이후가 영화의 오프닝 장면과 이어지게 된다.
한편 라쿠나 클리닉의 하워드 원장은 직원 메리에게 사랑 고백을 받는데, 하워드는 이를 매우 불편해하며 피하려 한다. 사실 하워드와 메리는 그전에도 사랑했던 사이였으나, 하워드의 아내에게 들킨 후 메리가 하워드와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 것이다. 하워드에 대한 기억은 지웠어도 마음까지 지울 수 없었던 메리는 잔뜩 화가 나, 클리닉에서 기억을 지웠던 환자들에게 기억을 지울 때 녹음해던 테이프 등의 자료를 보내버린다.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진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지우기 전 상대가 자신에 대해서 말한 단점들을 보며 다시(혹은 새로) 시작하기를 겁낸다. 지금은 서로 단점이 보이지 않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엘의 괜찮아요. 란 말에 클레멘타인도 같은 말로 대답하며 웃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2. 기억이란 무엇인가
사실 나는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기억 상실증에 걸리면 '내'가 아니게 되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꼭 '내' 기억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도 또 내가 있다. 시간 속에서 빚어진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 것이니, 내 기억이 가장 절대적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남의 기억에 있는 나라도 빌려와야 현재의 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기억을 지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의 일부를 지운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서로의 기억을 지웠기에 그 둘이 연인이었던 정체성은 그들의 친구들이나 기억할 뿐, 더는 그들에게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둘만 아는 기억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없던 일이나 마찬가지다.
3.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인 모양이다. 감성적으로 퉁쳐버리고 싶지 않은데도 이 영화는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그 둘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유는 기억을 지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러지 않았어도 재결합했을 수도 있겠지만!) 한 명만 기억을 지운 메리와 하워드의 사이에서 둘은 다시 사랑하기 힘들다. 기억을 가진 자가 자신이 가진 정보로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의 단점이 사랑을 덮었던 기억이 사라진 덕분에, 단점을 경험했던 기억이 사라졌고 서로를 피할 정보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서로에게 끌린다. 그러나 기억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이 저번처럼 파국으로 가지 않고 어쩌면 좀 더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는 것은 어쩌면 과도한 기대다. 언제는 자신의 단점을 몰라서 헤어졌겠는가. 알고도 그랬을 것이다. 수많은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현재의 둘은 그 기대를 가져야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헤어졌던 우리가, '그럼에도' 사랑하는 우리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같은 설렘을 가지고 이번에는 다른 기억을 쌓아나갈 테니, 그리고 우리가 그런 별것 아닌 단점으로 헤어졌음에도 결국 서로에게 끌렸다는 새로운 기억이 추가되었으니, 그 둘은 좀 더 단단한 기억과 사랑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억을 지웠어도 첫 번째 사랑처럼 이끌렸지만, 끝도 첫 번째 사랑처럼 난다는 슬픈 보장은 하지 말아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