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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그을린 사랑, 줄거리 및 오이디푸스와 용서의 드라마

by 잼나나 2024. 6. 24.

 

1. 영화 기본 정보 및 줄거리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0년도 영화로 희곡 <화염>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역시나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볼 것을 추천한다. 제목보고 애매한 멜로나 불륜 영화인줄 알고 봤다가 엔딩크레딧 내내 충격받고 멍하게 앉아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레바논 출신으로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 나왈 마르완이 사망하면서 자신의 딸 잔느와 아들 시몽에게 그간 존재조차 몰랐던 아버지와 형을 찾아 편지를 전달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과거 나왈은 무슬림 난민과 사랑에 빠져 도망치려 하지만 실패하여 남자는 나왈의 오빠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왈 역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임신하고 있던 아이를 낳자마자 뒤꿈치에 점 세 개를 찍어 고아원으로 보낸다. 고향을 떠나 삼촌 집에서 지내던 나왈은 자식을 찾기 위해 고아원으로 향하지만 이미 고아원은 폭파당한 뒤이고, 고아원의 아이들은 이슬람 테러 집단에서 데레사로 데려가버렸다. 데레사에 도착한 나왈은 아들을 찾지 못하고 이에 분노한 나왈은 민족주의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샴세딘이 이끄는 이슬람 테러단체에 가입하여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를 살해하고 붙잡힌다. 크파 리얏에서 나왈은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 아부타렉의 성고문으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버려질 예정이었던 아이는 산파가 빼돌려 살아남는다. 엄마의 유언을 지키려 과거의 흔적을 쫓아간 잔느는 나왈의 임신전력을 보고 이때 낳은 아이가 숨겨진 오빠라고 생각하여 시몽을 소환한다. 잔느의 요청을 받아 중동으로 향한 시몽은 산파를 찾아내는데, 그녀를 통해 감옥에서 낳은 아이가 쌍둥이이며, 형이 아니라 잔느와 시몽 남매임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는다. 고아원에 맡겨져 실종된 형제의 이름이 '니하드'임을 알아낸 시몽은 고아원을 습격했던 테러단의 리더였던 샴세딘과 만난다. 니하드 역시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그 니하드가 크파 리얏에서 나왈을 성고문한 아부 타렉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인 줄 모르고 그녀를 강간했던 것이다. 나왈도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으나, 후에 딸 잔느와 방문한 수영장에서 발뒤꿈치에 3개의 점이 있는 남자를 발견하여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충격받은 남재는 결국 자신들의 형제이자 아버지인 니하드에게 나왈의 편지를 전해준다. 두 명에게 적은 편지이지만, 받는 이는 하나인 그 편지를 받은 니하드가 나왈의 비석에 찾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2. 전쟁이 빚은 현대의 오이디푸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생부를 죽이고 생모와 결혼한 이가 있다는 신탁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이 설정 자체는 영화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기는 한데, 종교로 인한 전쟁으로 말미암은 현대의 오이디푸스에다 영화 속 나왈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역경의 세월에 가장 큰 대못같이 박혀있었던 일이어서 관객에게 충격과 슬픔을 던진다.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세상은 그들을 왜 이렇게 잔인한 결말로 몰아넣었는가. 죽도록 찾아 헤매던, 사랑하는 이와의 자식. 자식을 잃고 복수를 하기 위해 테러를 저지르고, 갇혀서 15년을 살아가면서도 꼿꼿한 정신을 잃지 않았던 그녀. 강간을 당해 낳은 쌍둥이마저 보듬어 키워낸 그녀의 강인함은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니하드 역시도 처음부터 고아원에 버려진 채 살았고, 자신이 속해있던 집단에서 영웅이 되어 어머니를 찾으려던 의지 자체는 비난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 물론 아부 타렉으로서 '강간'을 저지른 건 논외이다.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이긴 하나 이건 옹호의 여지가 없다.) 세상이 그들을 잔인한 소용돌이 속에 집어넣어 족보를 꼬아버렸지만, 결국 잔느와 시몽은 자신들의 아버지이자 형인 니하드와 '함께' 있기로 한다. 일견 연대와 가족, 사랑으로 훈훈한 마무리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3. 과연 용서와 치유의 드라마인가

하지만 모성애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런 잔인한 현실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굳이 알리는 게 맞는가에 대해 나는 솔직히 의문이 든다. 보듬어 키우지 못한 니하드에 대한 죄책감, 부채감, 그리고 모성애가 자신을 강간한 아부 타렉을 용서하게 하였다고 억지로 이해해보려 해도 그럼 잔느와 시몽은 무슨 죄인가. 아버지가 형이라는 사실, 그리고 심지어 어머니를 강간하여 자신들을 낳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나. 모르는 게 나았을 사실이라고 본다. 있었다 없어져서 빈자리가 큰 가족도 아니고, 애초에 있다고 생각도 안 했던 가족을 얻게 되면서 받게 되는 충격이 너무나 크지 않은가. 마지막까지 지고 가기에는 비밀이 너무 무거웠다고, 누구라도 자신의 이렇게 힘들었던 삶을 알아주기를 바랐다고 하는 게 오히려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전쟁의 참혹함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해 준 영화임에는 틀림없으나 결국 개인적, 가족적 차원의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안일한 접근으로 해석해서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보는 동안에는 보느라 정신없고, 보고 나서는 고민해 볼 것이 많은 영화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