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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나이듦에 대하여

by 잼나나 2024. 6. 22.

1. 영화 기본 정보 및 줄거리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2014년도 작품으로 줄리에트 비노쉬, 크리스틴 스튜어트, 클로이 머레츠라는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클로이 머레츠의 출연 비중은 높지 않으나, 라이징 스타로써의 반짝임과 오만함을 한정된 시간 안에 잘 표현해 냈다. 줄리에트 비노쉬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이렇게 뛰어났나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마리아 앤더스는 20년 전,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연극에서 상사 헬레나를 유혹해 자살에 이르게 하는 매력적인 시그리드를 연기해 세계적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다시 상영하는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헬레나 역할로 출연해 줄 것을 요청받는다. 자신의 매니저 발렌틴과 함께 리허설을 하려 알프스의 실스마리아로 떠나는 마리아. 시그리드로 남고 싶다는 욕망을 부정할 수 없는 마리아와 헬레나의 매력에 주목할 것을 주장하는 발렌틴과의 갈등은 계속된다. 대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부터 시그리드로서 보아왔던 대본과 헬레나로서 본 대본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추문으로 얼룩진 라이징 스타 조앤이 시그리드 역할을 맡게 되었음을 알고 마리아는 젊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 숨을 조이는 연기와 숨통을 틔워주는 영상미

줄리에트 비노쉬는 '나이 듦'을 거부하고 싶은 동시에 품위를 잃지 않고 싶어 하는 마리아 앤더스의 복잡한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런 마리아의 매니저로서 그녀에게 대본 해석에 대해 조언을 하며 갈등을 빚어내고, 그러면서도 마리아가 의지할 곳이 되어주는 영리한 발렌틴을 연기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해 낸다. 어쩌면 진부한 보조자의 역할에 그칠 수도 있는 역할을 '시그리드'와 겹쳐지도록 만들어낸 것은 에너지 넘치는 발렌틴의 젊음을 그려낸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매력 덕분일 것이다. 연기력 배틀이라도 하듯 팽팽한 두 배우를 오가는 연극적인 구성의 영화 속에서 숨 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아름다운 스위스 알프스 지역의 자연 배경이다. 뱀처럼 소리 없이 꾸물거리는 구름이 흘러가는 실스마리아 지역, 뱀일 수도 있고 구름일 수도 있는 그 하얀 무언가는 어쩌면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배우와 역할의 애매모호한 간극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든 간에 멀리서 본 실스마리아의 구름은 한 편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3. 영화와 현실과의 경계, 그리고 나이 듦에 대하여

마리아 앤더스는 헬레나를 연기하고, 줄리에트 비노쉬는 마리아 앤더스를 연기한다. 영화와 영화 속 연극, 그리고 실제 배우의 경계가 어느 순간 뿌옇게 흐려짐을 느끼게 된다. 모두 다 '여배우' 이기 때문일까. 꼭 그렇진 않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것이 어디 여배우뿐일까. 마리아 앤더스에게 공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 모두 한때는 시그리드였으며, 헬레나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리아에게 이입한 관객에게는 통통 튀지만 오만한 조앤의 모습이 얄미워 보이는데, 사실 마리아가 시그리드였을 때 과연 덜했을까? 여기에 더해 헬레나 역을 맡았던 배우가 연극이 끝난 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마리아가 헬레나 역을 맡는 것을 더 꺼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마리아와 발렌틴의 관계는 일견 헬레나와 시그리드의 모습이 비치기도 하며, 할리우드 트러블 메이커 조앤과 불륜이라는 추문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접점도 영화와 현실의 구분을 흐리게 한다.

그렇게 영화를 현실에 대입해서 보면 역설적으로 줄리에트 비노쉬는 마리아 앤더스 역을 수락함으로써, '시그리드로 남고 싶어 하는' 헬레나를 넘어선 게 아닌가 싶다. 아니, 넘어섰다는 것도 사실 감히 내 기준에서 내린 판단이다.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 것인지,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젊은이들의 시각에서 나이 든 사람들이 '거슬리지 않는' 방향으로 빠져주기를 바라면서 말하는 이기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다. 경험과 연륜이 쌓였다 해서 어찌 내려놓기가 쉽겠는가. 그러지 못한다 해서 '노욕'이라는 단어로 함부로 폄훼하기에는 오랜 기간 품어온 열정이 새파랗게 어린 열정보다 못하리라는 근거는 없다. 나이 듦이 괜찮은 척 연기해야만 품위 있게 늙는 것이라면,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해준 발렌틴의 혜안에 어쩌면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나이 들어가고 있으니까, 한 번쯤 이 영화를 보면서 청춘과 중년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