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기본 정보 및 줄거리
현재는 듄의 영화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6년 작품으로, 에이미 애덤스, 제러미 레너가 출연한 SF 영화이다. 특히 언어학자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가 출중하다. 아직 관람 전이신 분은 사전정보 없이 보실 것을 권한다.
외계비행물체 12개가 세계 각국의 상공에 등장한다. 외계인의 언어를 번역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언어해석학자 루이즈 뱅크스는 미국 육군 장교의 요청을 받아 외계 비행물체 안으로 들어가 외계인 두 명을 만난다. 화이트보드에 글자를 써서 보여주자, 외계인들도 촉수 끝에서 검은색 물질을 뿌려 자신들의 문자를 선보인다. 루이즈는 물리학자 이안과 함께 외계인들과 필담을 나누며 서로의 언어와 문자를 교환한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가 인류의 언어와는 다르게 앞뒤가 없는 비선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비선형의 언어이자 '무기'를 갖게 된 루이즈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언어결정론처럼, 그들의 문자를 배운 루이즈가 그들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루이즈는 외계인들이 뿌린 작은 글자들을 모아서 읽는데, 미래의 자신이 쓴 외계문자 책을 통해 모든 글자의 뜻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외계인에 대항하여 협력하던 각국 간의 균열이 심해지고 중국이 선전포고를 하자 루이즈는 자신의 미래로 향해 미래의 중국 장군이 알려준 번호로, 장군의 부인이 말한 유언을 전달하여 공격을 취소하게 된다. 그 후 외계인들이 무사히 떠나고 나서, 루이즈는 이안에게 만약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게 되면 그 미래를 바꾸고 싶은지 물어본다. 루이즈는 자신이 본 미래 속에서 이안과의 사이에서 딸 한나를 낳고, 한나가 희귀병으로 죽게 될 것이며, 그런 자신을 이안이 떠나버릴 것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루이즈는 이안을 꽉 끌어안는다.
2. 외계 언어 해독의 과학적 접근
외계 생명체과 인류 간의 첫 접촉을 다룬 영화로, 단순히 신비한 존재와의 만남이 아닌 '언어해독'의 관점으로 상호 이해의 과정을 그려낸다. 흔히 외계인과의 조우를 다루게 될 때 감상적인 영화에서는 언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감정을 교류하게 되거나, 아니면 소통이 부재한 채 바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거나, 혹은 우월한 외계의 존재가 지구의 언어를 할 수 아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는데 컨택트는 이 모든 경우에서 벗어난다. 주인공 루이스는 언어 해석학자로서 외계 언어를 해독하려는 노력을 그려내는데,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촉수를 가진 두 명의 외계인 역시 마찬가지다. 외계의 존재와 서로의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인터스텔라의 소통 과정을 영화로 다룬다는 것은 굉장히 지적인 소재이다.
3. 컨택트 속에 나온 언어결정론
이 영화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언어결정론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을 구성하는데 언어가 어떠한 영항을 미치는지를 단순히 사고의 확장을 넘어서, 인지의 영역까지로 바꾸어낸다. '시간'의 선형성이 없는 언어를 체득함으로써 현재의 루이즈는 미래와 과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언어를 '무기'라 칭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선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선형적 인지를 하는 나로서는 이 비선형적 인지라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려 하면 바로 두통이 올 지경이다. 하지만 하얀색에 대한 수많은 어휘를 가진 언어를 구사하는 자들이 나보다 더 다양한 하얀색을 인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을 보면, 이 비선형적 언어를 구사하는 자가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것도 설득력이 충분하다.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되는 영화라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단순히 외계인과의 소통 수단이 되는 것을 넘어, 사고와 인지를 결정 있는다니. 간과하고 있던 언어의 영향력을 계속 곱씹어 보게 된다.
4. 운명을 대하는 자세
앞서 언급된 언어학적인 깊이로 인해 이 영화가 지적인 탐색으로만 지루하게 끌고 가는 것은 아닌가, 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겠고, 시간을 넘어갈 수 있는 루이즈가 소위 용한 점쟁이 마냥 미래를 내다볼 수 있으니 좋겠다-고 생각하는 단편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 나오는 루이즈의 선택은 '미래를 알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의 단순히 부러움을 사고 말 정도의 차원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녀는 현재의 선택으로 이안과 함께하면 그려지는 미래에 대해서 알고 있다. 행복할 것이고, 사랑하는 딸을 낳을 것이고. 그러나 그 딸이 불치병에 걸려 죽을 것이고, 남편은 자신을 떠날 것이다. 잠시간 행복하고, 어쩌면 더 오랜 시간 고통스러울 미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루이즈는 그 미래로 향한다. 아니 어쩌면 미래로 향한다는 것도 선형적 시간관념을 가진 내 기준에도 보는 것에 불과하다. 루이즈의 선택은 체념도, 포기도 아니다. 앞, 뒤 어디부터 읽건 똑같은 딸 HANNAH의 이름처럼, 현재에서 미래로 겪든, 미래에서 현재로 겪든, 루이즈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선형적이지 않기에, 처음도 끝도 없기에. '모든' 순간을 반기고 끌어안는 그녀의 모습에서 느끼는 감동은 깊고 진하다.